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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베이터관련주, 1종목 NO.569

by goodpoint77777 2021. 6.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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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9번

엘리베이터관련주입니다.

 

 

 

 

초기의 엘리베이터, 두레박의 형태

영화 <칼리굴라(Caligula)>의 이야기를 잠깐 해보려고 한다. 1979년에 만들어진, 당시 1,800만 불이라는 천문학적 제작비가 투입된 이 블록버스터 영화(예술을 표방했지만 실은 포르노에 가까운)는 지금 봐도 엄청나게 선정적이고 웅장하다.

당시 1,800만 불이라는 천문학적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 <칼리굴라>

특히나 인상 깊었던 것이 등장인물 중 한 명인 티베릴우스 황제를 거대한 ‘포르노의 소굴’ 속으로 안내하던 장면이다. 이때 등장한 구조가 엘리베이터와 비슷하다. 사람의 인력을 통해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라기보다 두레박에 가까운 ‘탈것’이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의 원형도 초기에는 이런 두레박의 형태였다.

 

 

아르키메데스로부터 엘리베이터가 시작되다

엘리베이터의 시작은 고대 그리스의 자연과학자 아르키메데스로부터였다. 그 이전에 이미 신전 건설 현장에서 석재와 자재들을 고정 도르래를 통해 날랐던 것을 보면, 엘리베이터에 관한 기본적인 기술과 원리는 확보된 상태였다고 할 수 있겠다. BC 200년이 되어서는 <칼리굴라>에 나온 것 같은 인력에 의한 엘리베이터가 출현하게 된다.

 

 

나폴레옹, 의자에 밧줄을 매달아 상하로 작동시키다

이후 엘리베이터의 발전은 아르키메데스의 아이디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한도에서 발전한다. 나폴레옹이 여왕을 위해 의자에 밧줄을 매달아 상하로 작동시켜 여왕이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 건물의 층간을 이동할 수 있게 했다는 기록이 대표적인 예이다. 동력원에 대한 획기적인 발전이 없는 상태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한정됐고, 이동시킬 수 있는 사람의 숫자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엘리베이터, 높이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다

결국 엘리베이터라는 개념은 소수 기득권층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품’이었다(물론 화물용이나 원시적인 도르래 형태의 ‘바구니’가 쓰이기도 했지만 본격적인 사람들의 대량 수송과는 거리가 있었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것이 엘리베이터와 건물의 높이에 대한 상관관계다. 기본적으로 엘리베이터가 등장하기 전까지 인류의 건축물은 그 높이에 제한이 있었다. 물론 건축 기술과 자재의 한계로 낮게 만든 것일 수도 있지만 진짜 문제는 높이에 따른 이동의 부담이었다.

건축물이란 조형물과 달리 사람의 거주나 활용을 전제로 만들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한정 없이 높게 만들 수는 없었다(사무실이나 집에 들어가기 위해 10층 계단을 계속 오르락내리락한다면 그 건물에 입주하고 싶을까?). 높은 건물을 짓고 싶어도 그 안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생각해야 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높이에 한계가 있었다. 이런 한계를 극복할 수 있게 해준 것이 바로 엘리베이터였다.

 

 

엘리베이터가 활용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 : 안정성

엘리베이터가 지금의 ‘의미’를 가질 정도의 능력을 보여주려면 세 가지 조건이 필요했다.

첫째, ‘안정성’이다. 엘리베이터가 실제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안정성이 담보돼야 했다. 공중에 매달려 있는 상태에서 끌려 올라가는 것이 기본적인 엘리베이터의 구조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끈이 끊어지기라도 한다면 인명 피해는 불을 보듯 뻔했다.

실제로 엘리베이터의 줄이 끊어지는 사고는 빈번하게 일어났고 그 때문에 엘리베이터에 대한 사람들의 불신의 벽은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태였다(엘리베이터 걸의 탄생 배경이 바로 여기 있다. 사람들이 엘리베이터에 대한 불신을 가지게 되자 그 보완책으로 등장한 것이 엘리베이터 보이였다. 제복을 입은 남자가 엘리베이터를 조작하는 걸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의 불신감을 해소시키려 했던 것이 엘리베이터 보이의 존재 목적이었다. 그것이 엘리베이터 걸로 변한 것이다).

이런 문제 때문이라도 엘리베이터를 한정 없이 높게 올릴 수는 없었다.

 

 

엘리샤 오티스, 안전장치가 설치된 엘리베이터 만들다

이런 문제는 1853년, 미국의 발명가 엘리샤 오티스의 등장으로 해결된다. 그는 1853년 뉴욕에서 열린 국제박람회에 직접 개발한 안전장치가 설치된 엘리베이터를 출품한다. 그리고 여기서 엘리베이터 역사상 길이 남을 하나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엘리베이터의 안전성을 증명하기 위해 직접 엘리베이터에 탄 뒤에 조수에게 엘리베이터 연결 케이블을 끊게 한 것이다.

세계박람회에서 엘리베이터를 시연하는 엘리샤 오티스

국제박람회장이 졸지에 마술쇼장이 된 것 같았다. 관람객들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오티스와 그가 발명한 엘리베이터를 올려다보았다. 잠시 뒤 조수가 연결 케이블을 끊어버리지만 오티스는 멀쩡히 엘리베이터 안에 서 있었다. 이 놀라운 퍼포먼스는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갔고, 국제박람회장의 하이라이트로 광고되었다.

 

 

 

세계 최초의 승객용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다

1856년에 영국이 미국 오티스사에서 수입한 엘리베이터.

이 엘리베이터는 3년 뒤 브로드웨이의 도자기 상점인 하우워트 사의 5층짜리 건물에 설치되면서 세계 최초의 승객용 엘리베이터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다. 이후 오티스는 ‘오티스 엘리베이터’라는 회사를 창설한다.

 

 

엘리베이터가 활용되기 위한 두 번째 조건 : 동력원

엘리베이터가 갖춰야 할 두 번째 조건은 동력원이다. 현대적인 엘리베이터의 기본 형태는 루이 15세가 베르사유 궁전을 만들면서 설치한 엘리베이터에서 완성됐다. 세인들은 루이 15세가 애첩을 몰래 만나기 위해 이를 만들었다고 입방아를 찧었지만, 엘리베이터의 사용 목적은 어쨌든 사람의 편안하고 안전한 이동이었기에 그 배후는 여기서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리라.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그 형태다. 당시 이미 엘리베이터는 지금의 모습과 거의 비슷한 상태였다. 문제는 동력원이었다.

베르사유 궁전을 만들면서 설치한 엘리베이터에서 완성한 루이 15세

1756년, 영국의 제임스 와트가 증기기관을 발명한 이래로 엘리베이터는 이 증기기관을 이용한 형태로 대체되기 시작한다. 이런 형태가 다시 전기로 대체되기까지는 100여 년의 시간이 더 흐르게 된다.

 

 

 

엘리베이터가 활용되기 위한 세 번째 조건 : 스피드

셋째, 속도이다. 5~6층짜리 낮은 건물일 경우 엘리베이터의 속도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층계를 올라가는 속도보다 빠르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층수가 높아진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같이 뉴욕을 내려다보는 거대한 마천루의 경우는 그 속도를 생각해야 했다. 전기가 아직 제대로 공급되지 않던 시절에는 증기로 구동하는 엘리베이터가 있었지만 그 속도를 담보할 수 없었다.

그러던 것이 분당 35미터까지 올라갈 수 있는 속도를 내는 기어식 유압 승강기가 등장하면서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게 된다. 그 전까지는 수압(펌프)으로 작동하는 엘리베이터가 대세였으나, 이 경우에는 속도와 힘 부분에서 명백히 떨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기어식 유압 승강기의 등장은 30층 이상의 빌딩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건축업자들에게 제공하게 된다(기어식 혹은 로프식 유압 승강기는 30층까지 올라갈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고층 건물, 엘리베이터로 날개를 달다

이런 모든 문제가 해결되면서 엘리베이터의 수요는 폭발하게 된다. 여기에 불을 붙인 것이 철골 건축이었다. 20세기가 시작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고층 건물을 짓게 된다. 그걸 가능하게 해준 것이 바로 철골 건축이었다. 이후 30층 이상의 건물이 우후죽순 격으로 마구 솟아나게 됐고 거기에 맞춰 엘리베이터도 발전하게 된다.

전기가 안정적으로 공급되면서 전기 모터가 등장했고 거기에 맞춰 전기식 조작 버튼이 사용되었다. 이때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현대적인 엘리베이터의 모습과 거의 가까워진다.

 

 

엠파이어 스테이트의 탄생, 67개의 엘리베이터 덕분

1931년 4월 30일 저녁, 사람들의 눈이 뉴욕 맨해튼 34번가에 집중됐다. 지상 높이만 381미터, 102층의 초거대 빌딩인 엠파이어 스테이트의 준공식이 시작된 것이다. 잠시 후 6,400여 개의 창에서 일제히 불이 켜지면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의 탄생을 선포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뉴욕 맨해튼에 있는 1931년에 지어진 102층 높이의 건물이다.

엠파이어 스테이트의 탄생을 가능케 했던 것은 67개의 엘리베이터 덕분이었다. 이 거대 빌딩을 걸어서 올라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당시 기준으로 봐도 에펠탑보다 81미터가 높은 괴물 빌딩이었다).

 

 

엘리베이터, 현대를 만든 핵심 키워드가 되다

이 빌딩의 등장은 도시의 발전(혹은 과포화)을 의미했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해 끊임없이 도시로 밀려들어 왔다. 그러나 도시도 수용에 한계가 있었다. 한정된 토지 때문에 끝없이 밀려오는 사람들을 다 받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가 등장하면서 사정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초고층 빌딩과 아파트의 등장으로 도시는 메가로폴리스로 발전하게 되었다. 백만 단위의 인구가 어느새 천만 단위의 인구로 발전한 것이다. 별것 아닌 것으로 보이는 엘리베이터가 실은 현대사회를 만들어낸 핵심 키워드였던 것이다.

 

 

관련이미지 

 

출처: Britannica Visual Dictionary © QA International 2012

 

[출처: - 마술처럼 보이는 기술 (사물의 민낯, 2012. 4. 16., 김지룡, 갈릴레오 SNC)]

 

 

 

 

 


  • 동사는 1984년 5월 23일 설립되었으며 1996년 7월 3일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에 상장됨.
  • 동사의 주요 사업 내용은 물품취급장비제조업, 설치 및 보수서비스업, 부동산 임대업, 관광 숙박업, 금융업 등으로 구성되어 있음.
  • 운반기계산업은 전반적인 경기변동과 설비투자 동향에 민감하며, 후방산업과의 연관 효과와 기술적 파급효과가 큰 산업적 특징을 가지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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